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니스 로드맨 (문단 편집) === [[영구 결번/스포츠#s-3.6|영구 결번]]과 [[명예의 전당#s-3.1.3]] 헌액 === 2011년 4월 2일(한국시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시카고 불스와의 경기에서 하프타임때 [[영구 결번/스포츠|영구결번]]식이 치러졌다. 로드맨은 "내 번호 10번이 영구결번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면 팬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보여줬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감격해했다. 2011년 2월 19일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올랐으며, 2011년 4월 4일(미국시간). 드디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물론 여기서도 기행은 멈추지 않아 [[http://sports.espn.go.com/nba/news/story?id=6289323|청바지에 풀어헤친 흰색 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입성 소감에 대해서는 "믿기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행보를 돌이켜 봤을 때, 명전 입성은 힘들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미국의 농구역사가, 세이버 전문가들, 바스켓볼 레퍼런스의 누적기록을 통해 평가하는 명예의 전당 입성지표에 로드맨의 명전 가능성을 정말로 반반, 50%로 잡았을 정도. 야구 명전에 비해 허들이 낮은 농구 명전임에도 이정도로 로드맨의 명전입성이 아슬아슬했던 건, 눈에 보이는 득점,어시 기록이 없다시피한 수비전문 선수인데다 팀의 리더나 에이스, 득점원과는 거리가 멀었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대에 수비로 이름을 날린 벅 윌리엄스, 오티스 소프[* 쏘프는 전성기를 감안해도 로드맨보다 확연히 아래이긴 하지만 20-10을 기록한 적 있는 엘리트 빅맨이고, 벅 윌리엄스는 올스타 3회, 올NBA세컨팀 1회, 올디펜스 퍼스트팀 2회, 세컨팀 2회에 선정된 선수이다. 결과적으로 올스타 1회를 제외하면 메이저 수상 이력이 없었던 쏘프야 그렇다 쳐도, 윌리엄스는 반지만 없을 뿐 딱히 로드맨보다 딱히 급이 낮은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명전에 가지 못했다. 로드맨과 윌리엄스가 공유하는 강점은 리바운드와 수비였는데, 로드맨이 그 두 분야에서 역대급의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면 윌리엄스는 그정도는 아닌 대신 평균 18점이상 기록 한 적이 세시즌을 정도로 괜찮게 득점지원을 해주던 선수였다. (실제로 먼 후대의 [[브룩 로페즈]]가 갱신하기 전까진 [[브루클린 네츠]] 구단의 통산 누적 득점 1위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로드맨은 한 번도 못 오른 세컨팀을 수상한 적 있는데다 올스타 선정은 더 많고, 그가 전성기를 보낸 80년대 초중반에도 서드팀이 있었다면 올NBA팀 이력이 한두 차례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등의 파워포워드들이 바늘구멍만한 명전 입상 기회를 가진 반면, 로드맨은 수비 전문 선수로서는 최상급의 수상 이력과 5회의 우승 횟수를 통해 명전에 입성할 수 있었다.[* 결국 수비 카테고리에서만 이루어지는 수상인 DPOY와 디펜시브팀은, (입성 확률에 어느정도 메리트가 있기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All-NBA Team 수상 횟수와 올스타 선정 횟수가 각각 한 번 뿐인 로드맨을 명전으로 보내줄 정도는 못 된다. 그보단 많은 우승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예로 [[클레이 탐슨]]의 경우 All-NBA 서드팀 2회, 올스타 5회 정도의 커리어로 명전급이라기엔 어중간한 위치에 있지만, 무려 4번의 우승을 거둔 덕에 명전 입성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여겨진다.] (1)주역으로서 많은 우승을 했다는 점, (2)블루워커임에도 올스타와 All-NBA Team을 챙기기는 했다는 점, (3)전문 분야인 수비에서 DPOY 2회를 비롯해 어마무시한 실적을 거두었다는 점,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빠졌다면 명전 입성이 어렵긴 했을 것이다. 여기서 1번을 거세한 커리어가 [[마크 이튼]][* 로드맨과 동일하게 올스타 1회 및 DPOY 2회 이력을 가진 역대 최고의 수비형 센터 중 하나였다. 로드맨보다 디펜시브팀 이력이 적고 All-NBA Team에 뽑히지 못하긴 했지만, 이건 그의 전성기 때 센터 포지션에 미친 오버롤의 공수겸장들이 몰려있었던 탓이 크다. (추가로 서드팀은 이튼이 데뷔한지 4시즌 뒤에야 신설되었다.)], 2번을 거세한 커리어가 [[마이클 쿠퍼]][* 레이커스 황금기의 일원으로서 로드맨과 동일한 5회의 우승을 자랑하고, DPOY와 수많은 디펜팀 이력을 자랑하나 올스타, All-NBA Team에는 한 번도 선정되지 못했다.]인 셈. 로드맨 본인은 자신의 명예의 전당 입성 이유에 대해, "선정 위원들이 나의 과거 부정적인 면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오, 그래도 꽤 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자신을 "좋은 득점 능력도 없었고, 훌륭한 운동선수도 아니었지만, 팀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라고 평했다.[* 참고로 위의 명예의 전당 입성지표는 바스켓볼 레퍼런스에서 임의로 정한 기준에 불과하며, 결국 투표단 각자의 견해에 따라 명전 입성이 결정되기 때문에 입성에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로 [[팀 하더웨이]]나 [[크리스 웨버]]는 각각 큰 논란을 빚은 바 있어 명전 입성이 기약없이 늦춰지다가 20년대에 들어 겨우 들어갔고[* 하더웨이는 지나친 동성애 혐오발언으로 논란을 빚었고, 웨버는 대학에서의 금품수수 스캔들이 터졌다.], [[마크 프라이스]]나 [[케빈 존슨(농구)|케빈 존슨]]의 경우 이렇다 할 큰 논란은 없었음에도 아직까지 명전에 입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 넷은 우승이 없는 걸 감안하더라도 클래스로 보나 수상이력을 보나 로드맨보다 훨씬 윗급의 선수들이었다. 이렇듯 명전이 단순히 기량 및 수상이력의 고저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고, 애초에 투표단의 성향이 계속 똑같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기에 '정확히 어떻게 해야 헌액되는가'를 아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파일:external/www.nba.com/rodman_110813.jpg]] 명예의 전당 헌액 연설을 하는 눈시울이 붉어진 데니스 로드맨. 옆에 있는 사람은 [[필 잭슨]]. [youtube(uwbI15Ucl8s)] 그리고 같은 달 4월 14일. 명예의 전당 입성 행사에 참여해 연설을 했다. 이때 로드맨의 헌액 연설은 횡설수설도 많았지만, 여러번이나 눈물을 쏟고 감정에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본인의 솔직한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 모습이어서 감동적이라는 평을 많이 받는다. 온갖 미사여구를 전부 빼고 허심탄회하고 소탈하게 중얼대듯 필 잭슨 감독 등의 인생의 은사를 언급할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내가 본 농구 선수중 역대 최강의 원투펀치는 조던과 피펜이다 라는 발언을 할때 관중석에 있던 피펜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수여자로 참여했던 필 잭슨 감독도 마치 막내동생을 보는 듯한 애정의 눈빛을 보내고 자신의 이름이 언급될때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필 잭슨 감독을 비롯한 척 데일리 등의 은사를 언급하며 이분들을 한 사람으로 만든다면 그 사람은 완벽한 인간일 것이라는 진심이 담긴 명언을 남겼다. 이때도 그 뛰어난 패션센스는 여전했다.[* 하지만 그가 입었던 자켓은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는데 자켓 팔 부분엔 자신의 NBA커리어 중 가장 영광의 순간에 달았던 백넘버 10번과 91번이 새겨져 있었고 등에는 불타는 농구공 형상에 위아래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시카고 불스의 팀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로드맨은 이날 연설에서 '''"나는 돈이나 유명세를 위해 뛰지 않았다. 죽을 뻔한적도 많았고 [[마약]] 거래를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실제 노숙 생활도 해봤고, [[노숙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오랜 기간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냈다"'''라고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